서해에서 길을 잃고 해변에서 최후를 맞은 향고래가 6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.<br /><br />지난 30일 밤 8시 인천 강화자연사박물관 1층에서는 수컷 향고래(sperm whale)의 '골격 표본' 제작작업이 한창이었다. 전체 공정의 95% 이상을 끝내고 막바지 이빨 부착작업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. <br /><br />대왕오징어를 잡아먹으며 심해 바다를 누비던 길이 14m, 몸무게 40톤의 향고래의 당당한 골격이 눈앞에 펼쳐졌다. 실제 고래 뼈로 우리나라에서 향고래 골격 표본이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.<br /><br />머리 부분은 몸길이의 1/3을 차지했다. 아래턱은 가늘고 길며, 원뿔 모양의 날카로운 이빨이 수십 개나 있다. 위턱의 이빨은 퇴화하어 눈에 띄지 않는다. <br /><br />가슴지느러미 골격은 몸집에 비해 작았지만, 사람의 손바닥 형상을 하고 있어 이채로웠다. 꼬리 부분은 추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뼈가 위아래 양방향으로 돌출된 것도 인상적이다.<br /><br />'골격 표본' 제작에만 8개월이 걸렸다. 제작에 참여한 김경환(52) 조형물 작가는 "특히 머리뼈를 수작업으로 고정하기가 쉽지 않았다"면서 "마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듯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"고 말했다.<br /><br />◇ 심해에 사는 향고래는 왜 강화도까지 왔을까? <br /><br />이 향고래는 지난 2009년 1월 강화도 부속 섬인 볼음도 해변이다. 주민들은 "자고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보니 작은 섬 하나가 보였다. 가까이 가보니 고래가 죽어 있었다"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.<br /><br />향고래는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. 수심 300m에서 1,000m에 사는 대왕오징어를 즐겨 먹는다. 때로는 수심이 2,200m에 이르는 심해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조사됐다.<br /><br />이런 특징이 있는 향고래가 수심이 얕은 서해에 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. 앞서 지난 2004년에도 수컷 향고래 한 마리가 전남 우이도 해변에 좌초돼 죽은 채 발견된 적이 있다.<br /><br />이 향고래의 위에서는 가로세로 각 50cm 크기의 스티로폼이 발견됐다. 이런 해양 쓰레기는 고래의 생명을 위협한다.<br /><br />고래들이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, 비닐 등을 대형 오징어로 착각하고 먹게 되면 위가 파열되거나 장협착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. 결국, 병든 고래는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하다 사망하기도 한다.<br /><br />볼음도 해변에서 발견된 향고래의 뱃속에서도 1ℓ짜리 플라스틱 물병과 비닐이 나왔다. 하지만 고래연구소 안용락 박사는 "물병의 크기가 작아 이것을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"고 밝혔다.<br /><br />그는 "볼음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향고래는 길을 잃고 서해로 들어와 죽은 것으로 보인다"면서 "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길 잃은 큰 고래가 해변으로 떠올라 죽기 쉽다"고 말했다.<br /><br />◇ 국내 최초의 향고래 골격 표본…제작에만 6년 걸려<br /><br />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양생물의 종은 다양하다. 하지만 자연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양생물 표본이나 샘플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.<br /><br />지난 2004년 전남 우이도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경우도 '골격 표본'을 제작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결국 무산됐다. 제작기간이 긴 데다 예산도 많이 들어 선뜻 나서는 해양박물관이나 자치단체가 없었기 때문이다. <br /><br />그런 의미에서 오는 6월 개관하는 강화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'향고래 골격 표본'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. <br /><br />골격 표본 제작에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반증이다.<br /><br />당시 향고래는 뻘에 있어서 크레인을 동원해 육지로 옮겨오는 것이 불가능했다. 결국 현장에서 고래를 해체해 매립했다. 뼈에 붙은 살덩어리를 썩혀 제거하기 위한 작업으로 매립기간만 2년 6개월이 걸렸다. <br /><br />고래 뼈를 발굴한 뒤에는 뼈가 머금고 있는 기름기를 제거하는 작업이 남아있었다. 1년 6개월 동안 뼈를 미온으로 가열하기도 하고 약품과 미생물 처리도 병행했다. <br /><br />또 1년동안 건조시켰고 골격 표본의 조립에도 8개월이 걸렸다. 약 8000만 원에 달하는 강화군청의 예산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. <br /><br />향유고래 골격 표본 제작을 지휘한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장은 "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향유고래 골격 표본을 완성해 기쁘다"고 말했다.<br /><br />그는 또 "이번 일로 우리 사회가 해양생물과 해양생태 보호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"고 밝혔다.